검사 한 번으로 수백 가지 질환 예측 가능해…사후 치료에서 사전 예방으로 확대

#지난 2013년 유명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본인의 유전자 분석을 한 후 예방적 차원에서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유방암 유전자로 불리는 BRCA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으며 이 돌연변이 유전자로 인해 유방암 발생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40~90% 높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이러한 과감한 선택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하면서 사전 예방 의술이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처럼 유전자 검사 한 번으로 수백 가지에 달하는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사전 예방’ 시대가 열리고 있다. 보건당국이 민간업체가 의료기관의 의뢰 없이 소비자들에게 직접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것. 그동안 제한됐던 ‘국내 개인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DTC) 시장의 빗장이 풀린 셈이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크리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DTC 시장은 지난 2015년 800억원에서 매년 25%가량 증가해 2022년에는 4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의료·제약업체들은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유전자 분석을 기반한 다양한 서비스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과학적 근거에 따른 맞춤형 건강관리에 소비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유전자 검사 통한 맞춤형 건강관리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지난 2016년 6월 개정돼 보건복지부는 유전자검사를 비의료기관이 단독으로 직접 서비스를 시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DTC를 허용했다. 이로 인해 건강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질병 발생시 이를 치료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는 예방 의학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것.  

현재 미국과 같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등과 같은 유전 질환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체질량지수 ▲중성지방 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비타민C 농도 ▲카페인 대사 등 대사 관련 7가지와 ▲색소침착 ▲탈모 ▲모발 굵기 ▲피부 노화 ▲피부 탄력 등 피부 관련 5가지 항목 등 총 12가지 종목에서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이처럼 유전자 검사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자 관련 업체들은 유전자 분석 관련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한국허벌라이프는 지난 1월 부산에서 진행된 ‘2018 스펙타큘라’에서 유전자 검사 서비스 ‘젠스타트(Gene Start)’를 공식 출시했다. 허벌라이프와 테라젠이텍스가 공동 개발한 젠스타트는 11가지 유전자 정보 분석과 식생활습관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가이드라인과 허벌라이프의 뉴트리션 제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최근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가운데, 한 단계 진화한 맞춤형 건강관리 솔루션을 선보이는 것.

젠스타트는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맞춤형 건강관리를 시작할 수 있도록 7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였다. 또한 1회성 검사 결과 도출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유전자 특성과 식생활습관에 따른 제품 추천을 통한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의 건강 상태는 유전적 소인과 식생활습관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비만의 경우, 비만의 위험 요인 중 하나는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변환하는 FTO 유전자다. 비만 유전자라고도 불리는 이 FTO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면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잘 저장돼 비만의 원인이 된다. 한편 FTO 유전자에 문제가 없더라도 평소에 고열량의 음식을 자주 섭취한다면 비만 위험이 높다. 젠스타트는 이러한 유전적 소인과 식생활습관을 동시에 파악해 보다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건강관리법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젠스타트는 ▲체질량지수 ▲중성지방농도 ▲콜레스테롤 ▲혈압 ▲혈당 ▲카페인대사 ▲비타민C농도 ▲피부노화 ▲피부탄력 ▲색소침착 ▲모발 굵기 등 총 11가지 항목의 유전자 정보를 제공한다. 젠스타트 구매는 허벌라이프 독립 멤버를 통해 신청 가능하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젠스타트 교육을 수료한 젠스타트 코치를 통해 지속적인 1:1 맞춤형 건강관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아미코젠퍼시픽도 유전자 검사 키트 ‘제노솔루션’를 판매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간단한 구강 상피세포 채취로 검사가 이뤄지며 12가지 신체적 특징에 대해 46개의 유전자를 분석한다는 설명이다. 

녹십자지놈도 한국인 체질에 최적화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인 ‘진닥터’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현재 상태와 유전 요인을 종합 분석한 뒤 개인맞춤 운동, 식이, 도움이 되는 성분까지 제시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운동처방사 및 영양학 전문가가 3만여가지 유형을 분석, 자체 개발한 건강관리 알고리즘을 통해 운동과 식이 등 개인에게 적합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양송현 녹십자지놈 대표는 “진닥터는 동아시아인을 기준으로 유의성이 높은 유전자만을 선별해 한국인에게 적합하도록 디자인했다”며 “진닥터를 통해 자신의 유전 요인과 현재 상태를 분석하면 맞춤 건강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진짜 맞춤형 화장품이다 

유전자 검사 서비스는 화장품업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피부 외형에 대한 진단을 넘어 소비자의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유전자 맞춤형 화장품’ 개발에 적극 뛰어들기 시작 한 것.
한국콜마홀딩스는 지난해 9월 세계적인 유전체 분석 기술을 보유한 한미 합작 법인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의 지분을 10.76% 인수했다. 

양사는 한국콜마의 화장품·의약품·건강기능식품 제조기술 및 마케팅 역량과 이원다이애그노믹스의 생물정보분석(Bioinformatics)기술 및 유전체 빅데이터를 활용해 유전자 맞춤형 상품을 개발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미용, 의료, 식품 등 다양한 측면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지원받게 될 예정이다.

한국콜마홀딩스 관계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비타민C 대사가 낮은 소비자에게는 비타민C가 함유된 화장품을, 탈모인자를 갖고 있는 소비자에게는 탈모예방 식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며 “더 나아가 비침습 산전검사, 암 진단 서비스 등 예방의료 부문으로도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아모레퍼시픽도 소비자 맞춤 피부 유전자 연구 강화를 본격화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유전체 분석 전문 기업 테라젠이텍스와 고객 맞춤형 유전자 공동 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협약을 지난 2013년부터 테라젠이텍스와 진행해 오던 피부 유전자 공동 연구를 강화, 관련 사업의 교류 가능성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체결했다. 
아모레퍼시픽과 테라젠이텍스는 그동안 공동연구를 통해 피부 특성 및 관련 유전자 연국를 진행해왔으며 5건의 특허를 공동출원하는 등 여러 성과를 이어온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이오페 브랜드의 도심 속 피부 연구 공간 ‘바이오랩’을 통해서 고객에게 차별화된 피부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특히 지난 2016년부터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연구 승인을 받아 고객에게 피부 유전자 결과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LG생활건강도 지난 2016년 유전체 기술 전문기업인 마크로젠과 설립자본금 60억원을 공동 출자해 합자법인 ‘젠스토리’를 세웠다. 젠스토리는 소비자가 직접 탈모, 피부노화, 비만 등 유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 서비스’ 개발 및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LG생건의 영업망과 마크로젠의 유전체분석 기술력을 결합한 상품 개발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유전체 사업은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시장 판도를 바꿀 정도로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며 “적어도 올해 안에는 유전자 맞춤 화장품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주도하는 유전자 검사 시장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질병 치료와 건강관리에 대한 대중의 큰 관심이 유전체 의학의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전체 의학은 질병 예방, 진단, 치료 그리고 관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 기반해 최적의 약물과 복용량 등을 결정해주는 맞춤형 치료제는 이미 의료 현장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미래에는 유전체 정보를 이용해 질병의 진단 뿐만 아니라 특정 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도 고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면 유전자 정보에 기반한 맞춤형 치료제와 예측을 통한 질병 예방으로 의료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매년 항암제 사용에 지출되는 약 800억 달러 중 대략 75%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낭비되고 있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성질환자로 인해 헬스케어 비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전체 의학은 항암제와 만성질환 시장에서만으로도 거대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세계 여러 나라들이 유전체 의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앞다퉈 뛰고 있다. 영국은 향후 5년간 10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건강지표로 활용할 계획이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시작된 BGI는 전 세계 유전체 데이터 상당수를 무서운 기세로 확보하고 있다. 또한 국제 유전체 의학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다수의 국가와 연구기관들이 손을 잡고 글로벌 콘소시엄을 구성해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12가지 항목의 제한된 서비스만 이뤄지고 있어 선진국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그만큼 소비자들의 관심도 떨어져 시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특히 현재 가능한 유전자 분석 정보로 미용이나 건강관리 등과 관련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만 집중돼 있어 질병 예방보다는 상품 판매 위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은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전체 의학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전에 유전체 관리 및 분석의 국제적 표준 마련이 시급하다”면서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한 규제 정비와 유전체 정보가 야기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유전체 의학이 당장 인류를 모든 질환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 잠재력은 미리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면서 “유전체 의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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