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골목에 자본이 밀려들어 왔다. 서울시 종로구 소재 서촌이 떴고, 그곳에 살던 일부 주민들은 튕겨졌다. 조용한 주택가였던 서울 마포구 소재 망원동 주택가도 새롭게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골목길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곳의 일부 주민들은 이전의 삶을 그리워했다. 골목길의 정감이 사라지면서 옛 도시의 매력도 퇴색 중이다. 새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내세운 카페와 식당들이 꾸준히 들어서면서 활력이 생긴 듯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활을 일구던 일군의 상인들이 밀려나는 일도 빈번해졌다. 도시 골목길의 변화는 누군가에 희망이고,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절망이었다. 가을이 한창이던 날 경복궁 서쪽에 남겨진 골목길에서 상권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종로구 사직단 건너편에서 30년 가까이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원장은 “여전히 할만하다”고 말했다. 이 미용실은 이른바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 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피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임대료가 올라가기는 했다. 자리를 잡았던 주변 상인들이 떠나는 것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성실하게 고객들을 대하면 업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27년이나 한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해 온 노하우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아서 떠난 상인들도 많다. 단지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흔들리기도 했다. ‘서촌 궁중족발 망치폭행 사건’으로 알려진 일련의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건은 지난 6월 궁중족발을 운영하던 김모씨와 건물주 이모씨가 상가 임대료를 놓고 지난해부터 다툼을 벌이다 급기야 김씨가 이씨를 망치로 내리치면서 비롯됐다. 이후 임차인 김씨는 구속됐다. 궁중족발이 있던 체부동 212번지 태성빌딩은 폐허처럼 변했다. 

주변 상인들은 그 여파를 힘들어했다. 근처에서 작은 상점을 하고 있다는 이는 “불경기로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데다 그런 일까지 생겨 동네가 흉흉해졌다”며 “그쪽은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고 설명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배화여고 입구까지에 이르는 골목에는 수많은 점포들이 이어져 있다. 서촌을 이루는 하나의 골목길이고, 구청에서는 이곳을 ‘세종음식거리’로 명명했다. 한 때는 내국인은 물론이고 중국·동남아 관광객들도 찾았다.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지만 궁중족발 사건으로 상권이 위축됐다. 

인근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태성빌딩 건물주가 명도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십 수 차례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동안 서촌은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분쟁의 중심이 됐다”고 했다.

서촌을 떠나는 사람들…“막막하다”
서촌에서 임대료로 인한 분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종음식거리 맨 끝 맞은편에 자리한 인왕빌딩은 2년 전 임차인·임대인 간 분쟁으로 지금까지도 3층짜리 건물이 모두 공실 상태다. 이 빌딩 외벽엔 ‘1층(90.3평) 보증금 1억원, 임대료 1000만원’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2년 전 임대료를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린 궁중족발 빌딩과 비슷한 금액이다. 주변 상인들은 “저 월세를 내면서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이정희 교수(중앙대 경제학부)는 “임대차보호법만으로는 임대료 분쟁을 해소하긴 어렵다. ‘바닥 권리금’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라며 “지자체 등이 나서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서울과 같은 지자체 등은 이미 나서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접수된 임대차 분쟁 72건 중 31건이 조정위원회를 통해 합의를 이뤘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나섰다. 정부와 국회는 상가임대차법을 개정했다. 법무부는 이 달부터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간다고 최근 밝혔다. 

기존법은 상가건물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기간이 5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서 임차인이 영업을 안정적으로 계속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개정법 시행으로 상가건물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으로 확대됐다. 임대인의 권리금 지급 방해행위 금지기간은 임대차 종료 6개월 전부터로 늘어났다.

서촌은 지금도 여전히 집이나 사무실, 생활과 밀접한 소매점 등이 음식점이나 카페, 커피숍 등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건물주와 용도가 바뀌게 되면서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리고 다가구주택 등에서는 집값 상승이 임대료 인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어떤 세입자는 수년 전에 십여 평 크기의 집에 전세 9000만원에 들어왔지만, 2년 뒤인 지난해 집주인이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요구했다면서 걱정이 많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종 카페가 경쟁적으로 몰리며 임대료가 치솟다 보니 이곳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생활업종 가게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국이다. 

10년 이상 이곳에서 가게를 해 왔다는 한 상인은 폭등하는 임대료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 상인은 “이전에는 월세가 수십만원 대였는데 이제는 100만원 단위로 올랐다. 그런데 앞으로도 더 오를 것 같다. 건물주가 공공연하게 우리가 가게를 빼면 새로운 세입자에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여기서 나가봐야 다른 곳도 임대료가 다 같이 올라 딱히 옮길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인근 식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전언도 들려왔다. 집주인이 언제부터 월세를 올리겠으니 여기에 맞춰 주든지 아니면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곳 사장님은 “수년 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단골도 만들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유동인구 늘자, 주거 만족도는 ‘하향’
서울 마포구 망원동 소재 망리단길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뜬’ 동네이다.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 명소로 부상했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출구에서 500m 가까이 떨어져 있는 망리단길은 서울 망원동 망원시장 옆 포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골목상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평범한 주택가가 풍경을 이루다가 망원시장을 지나고 나면 가게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아담한 규모의 이들 가게들은 때때로 세련된 느낌을 준다. 주택가 골목길 건물의 1층을 개조해 만든 가게들 중 특색 있는 곳들이 자연스럽게 SNS에서 회자됐고, 이 길이 망리단길로 주목받았다. 

몇몇 특색 있는 가게들이 생활공간인 일반 주택가와 어우러진 풍경이 이색적인 느낌을 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주택 밀집 지역이던 이 골목길에 몇 년 전부터 외부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오래된 주택이나 상가건물 등이 개조됐다. 작은 카페나 식당, 액세서리숍 등이 하나둘씩 새로 등장했다. 주택가 골목에 경리단길과 같은 상권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가을 하늘이 맑았던 휴일에 둘러 본 망리단길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여기저기 골목이 배경이었다. 커플들이 이곳저곳에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연이어 스마트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서대문 충정로에 살고 있다는 최모씨는 “망리단길에 예쁜 가게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이제야 한 번 와봤다”며 “사진을 찍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한 두컷 정도는 찍어서 페이스북에 같은 곳에 올리기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든 그냥 유명하다니 한 번 둘러보기 위해서든 이곳을 찾는 유동인구는 많이 늘었다. 소박했던 동네길이 번화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달갑지 않았다. 이들은 망리단이 정식 동네 이름도 아닌 데다 엄연한 주택가인 만큼 주민들의 주거안정이 중요하다는 쪽이다. 그런데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 

일부 주민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방문객에 예민했다. 망원동 자체가 다세대 주택과 빌라, 소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있는 주거 밀집지역이다. 사이사이 여러 종류의 작은 가게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최근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있다고 느낀다.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밤늦게까지 행인들의 말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며 “일일이 다른 곳에서 떠들라고 실랑이를 할 수도 없고, 창문을 제대로 열어 놓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주차문제도 주민들이 불만을 갖는 대목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막무가내 식으로 불법주차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주택가라서 그렇지 않아도 도로 폭도 좁고 거주민 주차공간이 부족했다. 외부인들이 여기저기 빈공간만 있으면 차를 대놓고 있어서 정작 이곳의 주민들은 주차가 한층 더 힘들어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주민들의 거주 불편을 일단 논외로 하면 유동인구의 증가로 상인들은 매출 증가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상권의 유명세로 임대료가 치솟는 현상을 이곳도 피하지 못하고 있어서 상인들 걱정이 적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유명세에 따라 방문객이 늘면서 임대료는 자연스럽게 올라갔거나 갈 추세인데 비해 매출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한 중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은 “젊은 커플 손님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작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배경으로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큼 매출이 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네를 둘러보는 사람들만 많이 늘었고, 인근 가게들을 볼 때 장사가 모두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매출은 제자리인데 임대료는 더 오를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ㅇㅇ길’…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
이 같은 상황에서 망리단길의 일부 거주민들은 지난해 ‘망리단길’이라는 명칭 자체를 없애자는 움직임도 보이기도 했다. 지역 주민 모임 ‘망원동 주민회’는 인터넷에서 ‘망리단길 안 부르기 운동’을 벌이며 서명을 받는 운동을 전개했다.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었다. 당시 이들은 ‘망원동 상가임대료가 1년 새 21%가 올랐다’고 주장했다. 상인모임의 한 관계자는 “사람이 많이 유입되면 자연스럽게 그 건물의 시세들이 올라가게 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시세가 올라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임대인은 시세에 맞게 올라간 임대료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임차인들 같은 경우는 계속 오랫동안 장사를 그곳에서 해왔던 상황이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은 지나기 때문에 사실상 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야 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설명으로 이어졌다.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재 모습이 SNS상에서 붙이는 ‘ㅇㅇ길’에 담겨져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서 신현준 교수(성공회대 국제문화학과)는 “허름한 동네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들어서면, 3~4년 뒤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오고, 다시 3~4년이 지나면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이 들어온다”고 ‘서울, 젠트리프케이션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밝혔다. 

이 책에서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기본 공식이라 할 수 있는 이 과정이 이제 서울에서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법칙으로 굳어져버린 듯 하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선한 개발’을 통해 ‘참한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일부 도시계획가들의 주장은 공상처럼 들린다”며 “한 도시계획가는 이를 두고 서울을 ‘리씽킹’하자고 주장하는데, 이런 리씽킹은 ‘선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능하다’는 망상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구도심의 활성화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에 따른 그림자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요구되는 시절을 맞이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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