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사랑>


결혼을 졸업한다. 졸혼. 이혼과는 사뭇 다른 개념이지만 여기에도 사랑은 없다. 사랑이란 초울트라파워 무적의 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쇠약해졌으며 호르몬으로 형성된 신체는 굴복당했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함께 이겨내자고,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자고 약속했는데…. 결국은 졸혼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목숨도 내줄 것 같은 사랑이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서로 다른 이유로 등을 돌렸지만 우리는 사랑했다. 다만 앞으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는 것, 남들은 모두 불가능해도 우리의 특별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다짐은 썩어버렸다. 그것은 나약한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없다. 졸혼만 남았다.

졸혼(卒婚)
수료증 하나 없지만 안녕히 가세요
흰 베일 두르고 화관 쓰고 들어간 문
우리라는 우리에서 별 생기듯 아이들이 생겨나
엄마! 아빠! 이런 이름도 만들었지만
졸혼을 선언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당신도 부상을 입은 듯
날 궂지 않아도 자주 절뚝거렸지요
결혼은 참 오묘하고 어려운 제도
사랑이 기본이지만, 인내, 희생, 허위, 포기…
이런 것도 함께 필요한 넓은 제도이지요
그래서 가끔 이혼(離婚)을, 혹은 해혼(解婚)을
그런 말과 제도의 선용을 떠올려 보지만
비겁한 습관으로, 길들임으로, 게으름으로
무엇보다 아이들을 떠올리며
다시 끌어안곤 했지요
고양이 피하다 호랑이 만날 수도 있어
비겁한 계산으로 온 힘을 다했지만
실상 내 안에는 벌써 과부가 된 땅이 있는 것
굳이 말 안 해도 당신 잘 알 거예요
미쳐야 미친다기에 참고 허우적이다
웅덩이만 커졌고 살림은 늘 후줄근했지요
졸혼을 한다해서 더 행복할 일도 없지만
아침에 먹은 국그릇에 남은 얼룩처럼
그사이 맛도 향기도 식어 습관만으로 무사한
빈 수레를 운명이라 이름 할 수는 없어요
전쟁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패잔병을 싣고
멈추지 않고 달리는 바퀴를
해로(偕老)라고 부리지는 않을 거예요
빛나는 졸업장도 진학할 상급 학교도 없고
다음 정차역은 홀로의 광야
그래도 그동안 수고했어요.
결혼이여! 안녕히 가세요
결혼 날 뛴 가슴처럼 졸혼 날도
가슴이 좀 뛰긴 뜁니다
흰머리 보며 이렇게 졸혼 예행시 
한 편 써 둡니다.


비겁한 계산으로 온 힘을 다했지만
실상 내 안에는 벌써 과부가 된 땅이 있는 것
굳이 말 안 해도 당신 잘 알 거예요
<졸혼(卒婚) 내용 중에서>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