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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내몰린 서민 생존권

기사승인 2019.10.08  15: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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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웬만한 거리와 골목은 편의점이 점령했다. 편의점은 단순히 생필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다. 도시락 카페이자, 항공권도 살 수 있는 종합 물류 시스템을 접목한 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 중이다. 복합 생활 서비스 공간으로 변신한 편의점은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로 불린다.
반면 동네슈퍼에서 변신한 나들가게는 가파른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오프라인 유통의 과거로 묻힐 공산마저 있다. 편의점 등에 밀려서 사라지기 쉬운 동네슈퍼를 지원해 살리겠다는 장부 정책이 나들가게였다. 지난 10여년간 이어진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나들가게는 급격하게 위축됐다. 나들가게의 흔들리는 모습을 살펴봤다.
 
#고양시 주교동에서 9년째 나들가게를 운영해 온 박모씨는 ‘내년 봄에는 가게를 접어야 할지 편의점으로 전환해야 할지’를 고민 중이다. 주택가에 자리를 잡고, 부인과 함께 그럭저럭 운영해왔지만 최근 2년 사이 인근에 편의점이 두 곳이나 문을 열면서 매출이 급락했다. 박씨는 “그새 이 근방 슈퍼 한 곳이 문을 닫았고, 편의점이 두 개 생겼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편리한 편의점을 좋아하니까, 더 버틸 재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들가게는 정부의 스마트샵 육성지원사업의 명칭이다. ‘정이 있어 내 집같이 드나들 수 있는, 나들이하고 싶은 가게’라는 뜻을 담았다.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가 2009년 10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보고된 중소소매업 유통혁신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했다. 대형 할인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진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네슈퍼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매장면적 300㎡ 이하 동네 슈퍼마켓에 대한 정부 지원 사업을 마련한 것이다.

나들가게 사업에 참여하는 점포에는 1억원 한도에서 점포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과 나들가게의 브랜드 및 정보화를 위한 간판 교체 및 포스(POS)기기 및 시스템설치 등의 지원이 행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나들가게는) 고객과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동네슈퍼”라면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상권에 맞게 점포개선, 재개점 후 5개월간 2회 경영지도, 시설구매자금 저리융자, 포스 설치, 간판교체 비용 지원에 더해서 인증부여도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나들가게라는 소상공인 지원정책은 퇴물 취급을 받던 동네슈퍼에 내린 단비였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밀려 사라지기 쉬운 동네슈퍼를 리모델링해서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한 사업이다.나들가게 정책 시행 10여년이 됐다. 위기가 닥쳤다. 역설적으로 대형마트에 치이고 편의점에 밀리며 ‘사라지는 나들가게’가 됐다. 대형마트가 영향권을 넓히고, 무엇보다 편의점이 포화 상태일 정도로 한층 빠르게 확산되면서 나들가게는 지난 1년 사이에 절반가량 폐점됐다. 고사위기라는 우려가 나온다.

나들가게 1년새 43% ‘소멸’

골목상권의 유통업 구조가 ‘편의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나들가게’는 그 수가 급감 중이다. 넥스트이코노미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우리동네 나들가게 찾기’ 사이트에 등록된 나들가게 현황을 확인한 결과이다. 이를 보면 9월 18일 현재 운영 중인 전국 나들가게의 수는 6577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나들가게 수가 1만1560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가까운 나들가게가 1년여 만에 사라졌다. 올해 들어서만 한 달에 500개 이상의 나들가게가 사라졌다. 하루에도 20여개 가량의 나들가게가 문을 닫은 셈이다.

전라도 광주 지역과 제주도에서 가장 큰 폭의 나들가게 폐점이 있었다. 지난해 말 272곳의 나들가게가 있었던 제주도에는 현재 137곳만 남았다. 67%나 급감했다. 광주 지역도 크게 줄었다. 광주에서는 530개였던 나들가게 중 234개만이 현재 운영 중이다. 기존 나들가게의 절반 이상이 줄어든 것이다.대전 지역도 절반 이상 줄었다. 326개였던 대전 지역 나들가게가 이제는 155개만 남았다. 축소 폭이 절반에는 미치지 않지만 서울과 경기도처럼 나들가게 분포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의 위축은 심각한 수준이다.

사라진 나들가게의 수가 가장 많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말 1588개의 나들가게가 있었지만 현재는 700곳 이상이 줄어든 860개에 불과하다. 경기도는 가장 많은 나들가게가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는 2090곳의 나들가게가 도내에 존재했다. 현재 경기도의 나들가게 수는 1132개로, 1년도 안 된 기간에 1000여 곳의 나들가게가 문을 닫았다.

나들가게 급감의 문제는 국회에서도 앞서 지적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소속 백재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나들가게 도입 이후 예산지원·폐업·취소현황’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를 보면 2010년 이후 투입된 나들가게 예산이 1030억원에 달했지만 열 곳 중 세 곳 꼴로 폐업·취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 의원에 따르면 2010년~2018년 8월까지 선정된 나들가게는 모두 1만1473개였지만, 같은 기간 폐업·취소한 나들가게가 3696개였다. 폐업·취소율이 32%에 달했다. 3343개는 중소벤처기업부에 통지 없이 편의점·일반슈퍼·타업종으로 전환 또는 공실된 경우였다. 이중 편의점·일반슈퍼로 전환하는 점포가 1848개로 전체의 50%에 넘었다.

이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나들가게의 경우 편의점과 달리 계약이 아닌 지원사업 협약서로 체결하는 구조이다 보니 위약금 등 강제조항이 없다”면서 “나들가게 전용 포스(POS)를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가게에 대해 국세청 조회 후 현장 확인 절차를 거쳐 폐업 점포로 통계를 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의원은 “나들가게 사업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일방적으로 폐업하는 경우가 많고 그 중 편의점·일반슈퍼로 전환하는 점포가 절반인 상황은 예산 투자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의원은 이어서 “중소벤처기업부는 골목상권의상징인 동네슈퍼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다 효율적인 운영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들가게 지원 1곳당 500만원

국회의 지적은 나들가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보다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강조로 해석된다. 상당한 정책 자금을 투입했지만 나들가게가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하는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0년 나들가게 도입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지원된 나들가게 관련 예산은 총 1030억원, 연 평균으로는 114억4000만원 가량이었다. 나들가게를 운영하는 각각의 점포에게 개점지원·경영지원·선도지역 등의 명목으로 지원된 금액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479만 6000원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원책이 대부분 외형에 그치고 사후관리는 소홀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간판교체와 포스 설치 등 외형적인 하드웨어 교체 위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동네슈퍼 경쟁력 강화의 핵심인 ‘가격 경쟁력’과 ‘다양한 제품’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찾지 못했다. 이는 나들가게 사업 정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내놓는 상품이나 편의점의 다양한 제품 구색에 밀려 매출액 감소를 이겨내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다.

고양시 덕양구에서 나들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편의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서 “제품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에서 편의점을 따라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근에 속속 새로운 편의점이 문을 열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2년 사이에 이 나들가게에서 반경 200m도 안 되는 지점에 편의점이 두 개나 들어섰다. 상권의 변화가 딱히 없는 주택가에서 편의점의 신규 진출은 나들가게 매출 급락의 결정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들가게 업주도 “거대한 유통망을 갖춘 기업형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소규모인 나들가게의 매출은 계속 줄고 있다”며 “유통구조나 인력 운영면에서의 차이를 줄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나들가게 생존=소비자편익↑

이 같은 상황에서 나들가게의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사업 취지에 맞춰 매출 증대 및 수익성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자연스레 부각됐다. 아울러 나들가게 대부분은 영세한 생계형 자영업자가 운영하고 있어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나들가게 지원사업에도 △노후시설 개선비 지원 △점포마케팅 컨설팅 △고객관리 교육 등이 포함돼 있다. 지원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들가게 지원사업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정기적인 공동세일전 개최와 같은 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한국나들가게협동조합연합회를 주최로 해서 전국공동세일전을 개최한 것은 골목시장 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지난 9월 5일에서 11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된 추석맞이 나들가게 세일전은 나를가게를 찾는 고객들이 명절 선물세트와 각종 생활용품을 50∼8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은품 이벤트 함께 진행했다. 행사기간 중 매장 내 2만원 이상 구입한 고객에게는 선착순으로 사은품을 증정하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나들가게 지원사업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단은 지원사업의 효과를 높이고 동네 나들가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통 전문가들은 나들가게에 대해서 보다 혁신적 창업과 창업전후를 아우르는 장기적인 지원, 대학과 지역사회, 대기업까지 함께 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진단한다.

한 전문가는 “정부나 지자체가 나들가게 육성사업을 하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란 쉽지 않다”며 “나들가게만의 특성을 살린 경쟁력을 강화하는 사업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나들가게의 생존, 이를 위한 경쟁력 강화는 단지 골목상권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서’ 라도 나들가게의 생존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른 전문가도 “동네슈퍼 상인들은 대부분 영세한 생계형 자영업자인데 이들이 급격히 퇴출되면 사회 피라미드 전체가 무너진다”며 “동네슈퍼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사회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형 유통업체를 견제할 수 있는 경쟁자가 필요하다는 측면과 함께 소비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나들가게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소비중심 편의점은 ‘급부상’

나들가게에 대한 정부 지원이 겉돌고 있는 와중에 유통업계에서는 소비의 트렌드가 달라졌다. 편의점이 소비의 중심 장터로 떠오른 것이다. 대기업 플랫폼을 활용한 편의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팽창이 이뤄졌다. 편의점 확장 대열엔 일부 동네슈퍼의 참여와 나들가게의 전환도 있었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편의점 점포수는 CU 1만3529개, GS25 1만3370개, 세븐일레븐 9736개, 이마트24 4078개였다. 상위 4개 브랜드 편의점의 점포수가 4만개를 훌쩍 넘었다. 최근 1년 사이 1만1560개였던 나들가게가 43%나 줄어든 6577개로 쪼그라들었다는 사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편의점은 다양한 상품구색 전략으로 급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편의점이 1인가구의 증가에 발맞춰 즉석·간편식 같은 특화상품을 늘리고, 은행·빨래방 등을 연결한 복합점포화로 경쟁력을 키운 게 성장배경이라고 분석한다.

편의점 점포수 급증의 기점은 2015년이다. 점포수가 △2015년 11.4% △2016년 12.5% △2017년 12.9% 등 매년 10% 이상 증가했다. 유진투자증권의 자료를 보면 상위 3개 편의점 브랜드의 점포수가 3만개를 돌파한 것이 2016년말이었다. 그해 4분기 기준 CU, GS25, 세븐일레븐의 점포수 합이 3만141개였다. 직전 년도인 2015년 이후 매분기 평균 777개씩 급증한 수치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편의점 매출규모도 2011년 10조원 규모에서 2016년말 20조원대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접 출점 제한, 유통업 부진의 악재를 딛고 매출을 늘리고 있다”면서 “‘편의점이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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