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인구가 5만이 채 되지 않는 함양. 쇠락한 소읍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자연풍광이 옹골지다. 5월을 맞아 숲이 더욱더 아늑한 까닭은 그 속에 감춰진 숱한 이야기 때문 아닐까. 수려한 숲길과 물길에는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선비문화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느릿한 걸음으로 함양의 깊은 숲길을 다녀왔다. 

계곡 따라, 정자 따라 걷는 선비길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이란 말이 있다. 한양에서 보면 안동이 왼쪽, 함양이 오른쪽에 있다는 뜻으로 ‘뼈대 있는 고장’을 말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조선 시대에 내놓으라는 유학자를 많이 배출했다는 점이다. 특히 함양이 선비문화를 꽃피우는데 누정(樓亭)이 한몫했다.

경치 좋은 곳에 어김없이 자리한 누각과 정자는 자연과 한 몸이 되고픈 선비들의 마음을 닮았으며, 세속을 떠난 선비의 은신처였고, 궁핍하지만 그것에 매이지 않는 안빈낙도의 장이었다. 또 시절을 즐기나 속되지 않게 풍류를 즐기는 멋이 배어 있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선비의, 선비에 의한, 선비를 위한 사상의 정수다.

함양에는 옛 선비의 발걸음을 따라 걷기 좋은 ‘선비문화탐방로’가 있다. 흔히 ‘선비길’로 불린다. 함양 화림동 계곡에는 8개의 정자와 8개의 담이 있어 ‘팔담팔정’이라 부른다. 현재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세 개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농월정은 2003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이들 정자를 따라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 6km가 1구간, 농월정에서 안의면의 오리숲까지 4.1km가 2구간이다.

선비길 탐방은 계곡의 상류에 자리한 거연정에서 출발한다. 선비들이 활을 쏘며 풍류를 즐겼던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넓은 암반 위에 지어졌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암반을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기둥(누하주)을 달리해 수평을 맞췄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선비정신의 표현이리라. 봄철 갈수기임에도 물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담소(潭沼)가 깊다. 옛 선비들은 이 물길을 ‘방화수류천’이라 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라는 뜻으로 ‘떠내려가는 꽃잎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곧 내가 된다.’는 의미다.

나와 자연이 해후(邂逅)하는 곳

군자정은 거연정에 비해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아 안정적이다. 군자정은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는 조선 성종 때 대학자인 함양 태생의 정여창 선생을 일컫는다. 정자가 있는 봉전마을은 정여창 선생의 처가 동네로 선생이 처가에 내려와 있을 때 자주 영귀대 암반에 앉아 화림동계곡의 절경을 즐겼다고 한다. 군자정을 지나 계곡과 숲으로 난 길이 2km 남짓 이어진다.

짧은 구간임에도 변화무쌍한 맛이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경사가 완만해 어린 자녀들이 걷기에도 무난하다. 길은 냇물을 따라 1km 정도 더 이어진다. 그 사이 세월의 운치가 전해지는 동호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한말 지역유림들이 세운 것으로 주변의 반석과 조화롭다.

1구간의 마지막 지점은 농월정이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암반이 드넓게 펼쳐지고 맑은 계곡이 농월정과 어우러져 풍류를 즐기기에 으뜸이다. 농월정이란 ‘고요한 밤에 냇물에 비친 달빛을 한 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뜻이다. 농월정 주변에 ‘달 바위’라 불리는 ‘월연암’이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에서 “탁족의 행복을 누린 가장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계곡은 함양 화림동의 농월정과 산청 지리산의 대원사계곡이다”라고 쓴 바 있을 정도로 이은 우리나라 최고의 탁족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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