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느끼는 특별한 멋과 운치

맑은 하늘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걸까? 그런데 이상하다. 빗줄기는 투명한 물이 아니다. 일정한 굵기의 패턴을 지닌 먹색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굵은 먹색 물줄기. 다름 아닌 120여 칸의 화려한 저택을 뒤덮고 있는 기와의 물결이다. 기와는 하늘에서 비질하듯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몇 걸음을 옮겨 다시 유심히 살핀다. 기왓장이 흑진주처럼 반짝인다. 햇빛이 예리한 칼날처럼 측면을 비춘 까닭이다. 한옥 주변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병풍처럼 에두르고 소나무가 무성해 바람을 쉬이 막아준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고고한 운치에 눈과 몸이 편안하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이곳은 강릉의 선교장(국가민속문화재 제5호)이다.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증축과 보수를 해온 끝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햇수로 따지만 300여 년의 세월이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이 가옥이 위치한 곳이 배다리마을(선교리)이어서다. 그 당시 선교장에서 배를 타고 경포호까지 건너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경포호가 넓었던 게다.

선교장에서는 오감이 모두 즐겁다. 은은한 가야금 소리, 눈이 편안한 신록과 그윽한 솔향, 손때 묻은 오래된 나무에서 느껴지는 반질반질한 질감,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있어서다. 그 옛날 풍류를 즐겼던 선비들이 선교장을 방문하는 게 그들만의 버킷리스트였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하겠다.

선교장은 족제비를 쫓다가 발견한 터에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명당이라는 뜻인데,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활래정을 보면 이구동성으로 이만한 명당은 보지 못했다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활래정은 선교장 초입에 있는 인공 연못에 세워진 누각 형식의 정자이다. 여름에는 연못에 연꽃이 만개해 활래정에서 보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길게 줄을 이은 듯한 줄행랑과 사랑채 ‘열화당’도 선교장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특히 열화당의 차양은 선교장에 초대되었던 러시아 공사가 선물한 것으로 값비싼 구리소재로 만들어 눈길을 끈다. 안채와 연결된 문의 아래쪽이 특이하다. 문지방으로 막지 않고 트여 있다. 이 집터를 안내해준 족제비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안채에서 집 뒤쪽으로 가면 초가로 지은 초정이 있다. 선교장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이곳에서 보는 풍광이 일색이다. 내친김에 발걸음을 숲길로 향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길을 따라 이어져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교장 박물관에는 광해군 하사품 말안장, 추사 김정희의 현판(홍엽산거)을 비롯해 300여 점의 유물이 전시 중이다.

함께하면 좋은 곳

검은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이라는 뜻의 오죽헌(보물 제165호)이 선교장 인근에 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1504∼1551)의 친정 별당 건물이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 비교적 오래된 건물로 손꼽힌다.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1536∼1584)를 이곳에서 낳을 때 꿈에 용이 나타나서 방 이름을 몽룡실이라 지었다. 별당 옆에는 단아한 모습의 안채가 그 앞에는 사랑채가 자리를 지킨다. 툇마루 기둥 주련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걸려 있어 가문의 기품을 소리 없이 대변한다. 안채를 지나 협문을 통과하면 정조대왕이 이이를 칭송하여 세운 어제각이 있다.

조선 시대 시인 묵객들에게도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바로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선교장에서 풍류를 즐기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흥선대원군 등 이름난 풍류객들이 이곳을 찾아 멋과 운치를 즐겼다. 선교장이 있는 강릉으로 떠난다.

여행정보

■ 내비게이션 정보 :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선교장

■ 여행 문의 : 선교장 033-648-5303, 오죽헌 033-66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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